군 내부에서 논란이 된 육군 참모총장실 공관근무지원 부사관 선발 기준
지난 18일, 육군 인트라넷에 한 부사관이 실명으로 육군 참모총장실 공관근무지원 부사관 선발 기준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댓글에는 실명으로 여러 부사관들이 지지하는 발언을 하는 등 군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 벌어졌습니다.
공관근무지원 부사관은 일명 ‘노예사병’으로 불리던 공관병 갑질 문제로 공관병이 폐지된 뒤 해당 자리를 부사관이 대체하면서 생겼습니다.
공관근무지원 부사관 선발 기준 논란
이번 육군 참모총장실 공관근무지원 부사관 선발 기준이 군 내부에서 큰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상사급을 뽑는 해당 자리는 자격기준이 장기복무자로 체력 1급 이상자여야 하며 올바른 인성 및 품성, 책임감과 도덕성을 겸비한 자로 여기까지는 어느 군인에게나 요구하는 조건입니다.
그러나 우대사항이 △급양관리 실무 경험자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증 소지자 △양식조리기능사 자격증 소지자 △(요리)관련 분야 학위 보유자 △(요리)관련 분야 경연대회 수상자입니다.
공관근무지원자가 아닌 요리사를 뽑는 듯한 요건을 내건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다분합니다.
부사관들의 비판과 반응
해당 비판 글을 올린 부사관은 “군 생활을 하면 할수록 부사관은 부대의 잡일을 하는, 그저 용사 대신 활용할 수 있는 소모품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댓글에서 한 원사는 “타군도 개인 공관을 위한 요리까지 가능한 ‘상사’급 편제는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이밖에도 “그냥 셰프를 뽑는 것 같다” “밥해주는 요리사가 필요한 거냐” “공관병 인권문제로 없어진 직책을 부사관으로 대체한다는 발상이 기분 좋지 않다” “요리사는 쓰고 싶은데 그럴 예산이 안되니 부사관으로 우려먹겠다는 의미로 보여진다” “우리 부대는 취사병도 부족해서 힘들다” 등의 댓글이 달렸습니다.
한 부사관은 “공관근무지원 부사관 모집 공고에 이렇게 조리 관련 자격증이나 커리어만 적어서 올린 건 처음”이라며 “요리사를 뽑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군무원이나 민간조리원을 뽑아도 무방한 걸 왜 굳이 현역 부사관을 뽑으려는 건지 모르겠다. 미군도 장성급이 되면 민간 요리사를 둘 순 있어도 부사관을 따로 두고 시키진 않는다”고 비판했습니다.
육군의 입장과 역할 규정
이에 대해 육군은 “공관에서 다양한 군사 외교 활동들이 이루어지고 있다”며 “그럴 때 조리 등의 부분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고 말했습니다.
본지의 육군 문의 결과, 공관근무지원 부사관의 역할과 근거는 분명히 있었습니다.
2017년 공관병 폐지 후 2022년 국방부는 ‘장성급 지휘관의 지휘 여건 보장을 위한 관사 운영 지원 인원 운용에 관한 지시’를 하달했습니다.
지시사항에는 일부 장성급 장군에게 관사 운영과 운전 지원 부사관을 지원하도록 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공관근무지원 부사관의 역할은 시설물 관리와 지휘관의 공적 임무 수행 지원 두 가지 임무가 있다고 합니다.
육군은 “이 지시에 따라 각 군이 운영해 나가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공관 관리 업무에 ‘요리’도 포함되냐는 질문에 “개인적인 식사, 지인과의 식사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전문가들의 지적과 비판
군 전문가들은 이번 육군참모총장실 공관근무지원 부사관 선발 기준이 국방부 지시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합니다.
문근식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는 “공관근무지원 부사관에게 요리 능력을 요구하는 것은 모든 비리가 시작되는 매우 적절치 않은 것”이라며 “식사 등은 본인이 해결하는 게 맞는다. 공관근무지원 부사관에게 요리 관련 업무를 시키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했습니다.
군 법무관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이처럼 채용 기준이 합리적인 이유 없이 내부 규정을 어긋나는 것은 부당하다”며 “행정규칙, 규정은 내부 종사자들이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요리사를 뽑는 것도 아니고 (공관근무지원 부사관 역할) 규정이 있는데 사고 방식이 10~20년 전에 멈춰 있다”고 일침했습니다.
이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징계 대상이라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육군사관학교 출신 최영기 법무법인 승전 변호사는 “요리 등 심부름을 시키는 행위는 사적 지시”라며 “사적 지시는 품위위반으로 징계대상”이라고 했습니다.
또 “하기 싫은데 하도록 만들면 강요”라며 “이는 공개적으로 사적 지시도 할 것이고 강요도 할 것이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꼬집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는 부사관단의 자존심을 해하는 일”이라며 “일반 장교와 부사관은 관사 등에 갈 때 ‘나 좀 차로 태워달라’고 해도 사적 지시로 징계 받는다. 이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징계대상이며 군의 발전을 저해하는 것”이라고 일침했습니다.
공관근무지원 제도의 역사와 개선 방향
2017년 군 지휘관 공관에 근무하는 공관병들이 지휘관과 가족들의 몸종처럼 활용되고 있다는 지적과 관련해 송영무 당시 국방부 장관이 공관병 제도를 폐지하고 민간 인력으로 대체하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시민단체 군인권센터에서 “박찬주 대장의 가족이 공관병, 조리병들을 노예처럼 부리면서 인권을 침해하고 갑질을 일삼았다”고 폭로한 데 따른 조치였습니다.
그러나 군 지휘관의 사생활 편의를 위한 지원을 세금을 들여 계속하겠다는 뜻이어서 논란이 지속됐습니다.
갑질 행태가 폭로된 전 육군 제2작전사령관 박찬주 대장은 2017년 8월 1일 전역의사를 밝혔습니다.
국방부는 “송 장관이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행정·지원 병력을 민간 인력으로 대체하고 현역 장병은 전투부대로 보내겠다’는 군 개혁 방안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전투부대에 있어야 할 부사관들이 병사 대신 공관근무지원 자리로 가게 된 것입니다.
공관병 갑질 폭로 사례들
당시 장성급 군 지휘관 공관에는 근무병, 조리병 등 2~4명의 사병이 근무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군 당국자는 “애초 공관병을 두는 취지는 지휘관들이 가족과 떨어져 혼자 생활하고 있는 형편을 고려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지휘관이나 그 가족들이 공관병들에게 사적인 심부름이나 허드렛일을 시키고 폭언까지 하는 등 인권침해 사례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군인권센터는 육군 제39사단에서 벌어진 공관병 폭행 및 가혹행위 의혹을 제기했고, 이 일로 당시 사단장 문병호 소장이 보직해임됐습니다.
2015년에도 당시 최차규 공군참모총장이 본인은 물론 아들까지 운전병을 사적으로 부리다가 갑질 논란을 빚었습니다.
2005년에는 한 특공여단장과 부인이 비닐하우스 관리를 못하고, 멸치를 잘못 보관했다는 이유로 공관병을 폭행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공관근무지원 제도의 개선 방향
이런 선례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육군 참모총장실 공관근무지원 부사관 선발 기준 논란이 재차 제기된 것은 권위적인 군 조직 문화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또 시대가 바뀐 만큼 공관근무지원 제도의 실효성 자체를 고민해야 하는 때가 됐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최영기 변호사는 “근본적으로 군 문화를 바꿔야 한다. 지휘관은 대우 받는 자리가 아니고 경험과 연륜을 바탕으로 부대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자리”라며 “참모나 부관은 필요하지만 관사 관리 같은 개인적인 허드렛일을 하는 자리는 군인의 업무 영역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문근식 특임교수는 “공관을 본인과 가족들이 관리할 수 있을 만큼 크기를 줄여야 한다”며 “공관을 으리으리하게 지어놓고 국민 세금으로 관리비를 낭비하고, 공관근무지원 부사관을 운영하는 것은 시대를 역행하는 행태”라고 지적했습니다.
최병욱 상명대 국가안보학과 교수는 “공관근무지원 부사관은 원래 목적대로 공관 관리만 전념하게 하고, 군사 외교상 연회가 열릴 때는 민간인을 활용하면 된다”며 “필요하면 군사 외교 활동에 필요한 예산을 별도로 책정하는 게 맞는다. 공관근무지원 부사관에게 요리를 요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여진다”고 말했습니다.
김민석 의원은 “공관병 제도가 폐지된 이후 도입된 공관근무지원 부사관제도는 관행적으로 이루어지던 불합리한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혁하기 위함이었다”며 “군의 개혁에 앞장서야할 장성들이 오히려 기존의 폐단과 악습을 부사관에게 전가하여 유지하려 한다면, 이제는 공관근무지원 제도의 실효성 자체를 고민해야 할 지점”이라고 했습니다.